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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암(舟巖) - 웅창마을
Date : 2021-08-23
Name : 장 선녀 File : 2021082320480079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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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있는 풍경

 

 

지역문화의 융성을 소망하는 주암(舟巖) - 웅창마을

 

글 정창식, 사진 김정미

  

 십 여 년이 훨씬 더 지난 일이다. 우리 문경을 멀리 떠나 객지에서 근무를 하던 때였다. 그즈음에 지역문화에 관심과 애정을 두기 시작하였다. 우리 문경을 보다 더 넓게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래서 책과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곤 했다. 그때 인터넷에서 한 장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배를 닮은 바위가 강 위에 떠 있는 모습이었다. 눈을 의심하였다. 우리 지역에서 자랐지만 이 같은 바위를 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어떤 누구로부터 이 바위에 대하여 들은 적도 없었다. 혹시나 싶어 다시 한 번 더 보았다. 사진 아래 문경시 산북면 웅창(熊倉)마을의 “주암(舟巖)”이라고 적혀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서 주말이 오기를 기다렸다.

 

주암정 (사진. 서헌강)

 

 마을에는 조선시대 세금으로 거둔 양곡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는데, 그 이름이 웅창이었다. 마을에는 한 때 지역 유교문화가 융성했던 자취들이 적지 않은데 산기슭에 죽림서당과 대원군의 철폐령에 훼철된 웅연서원 등이 있었다. 마을 앞에는 금천(錦川)이 흐르고 너머에는 조선시대 현청(縣廳)이 있었던 현리마을이 있다. 그리고 북쪽에는 한음 이덕형, 홍언충 등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근암서원이 있는 서중(書中) 마을이 있다.

 

  토요일 일찍 주암으로 갔다. 과연, 머리를 북동쪽으로 향한 배 한 척이 물 위에 떠 있었다. 사진에서 강으로 보였던 곳은 연못이었다. 그리고 바위 위의 정자, 주암정(舟巖亭)에서 정자 주인 채훈식 할아버지를 만났다.

  “옛날에는 바위 아래로 금천(錦川)이 흘렀어. 물길이 바뀌어 모래뿐이던 곳을 연못으로 만들었어. 

 

  금천은 동로면 황장산에서 발원하여 산북면과 산양면, 영순면을 내달려 낙동강 지류가 되는 삼강(三江)과 하나가 되는 큰 내이다. 옛날에는 금강이라고 불렀다. 

 

채훈식 할아버지

 

 

반백 년 동안 주암정(舟巖亭)을 관리해왔다는 채훈식 할아버지, 그는 17세기 지역의 유학자였던 주암 채익하의 10대손이다. 어린 시절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는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방황도 많이 하였으나 어느 날, 속리산 문장대에 다녀온 후 마음을 달리 먹었다고 한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주암정을 잘 관리해서 후손에게 물려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된 그의 주암정 사랑은 아침 일찍 정자 마루를 쓸고 닦는데서 부터 시작되었다. 입구에는 능소화를 심고 잔디를 가꾸었다. 정자에서 잘 보이는 곳에 자귀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며 연못을 만들었다. 바위에는 돌단풍도 심었다. 그러는 사이 새들이 날아왔고 물고기들이 헤엄을 쳤다. 사람들도 찾아왔다. 그리고 감탄하며 돌아갔다.

 

 

주암정

 

“어느 날, 서울 사람이 둘러보고는 조명등을 보내주겠데, 저기 있는 거야.”

그래서 밤이면 조명등 두 개를 켜놓고 연못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고 했다. 한여름, 불빛에 모여드는 고기들을 보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단다. 아마도 주암정을 위해 하루를 보낸 그가 주암정에게서 위로받는 유일한 시간일 듯했다.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주암정을 찾았다. 할아버지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문경시에서 도천사지 석탑에 대해 조사를 했는데 그 뒤로 소식이 없네....”

  

  도천사는 주암정 뒷산에 있던 통일신라시대 사찰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곳에 석탑 세 개가 나란히 있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석탑들이 쌍탑 또는 단탑 형식인데 이처럼 세 기가 나란히 있은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이곳과 보령 성주사지 삼층석탑이 유일하다고 한다. 도천사지 석탑들은 1975년 경 겨울 직지사에서 반출하여 이듬 해 보물로 지정받았다. 지금도 직지사 대웅전과 비로전 앞에 서 있다.

 

도천사지삼층석탑

 

 

“미국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옛날 사진을 받았어.... 밭 가운데에 이렇게 석탑 세 개가 십여 미터 간격으로 서 있었지.”

  

  그가 보여주는 흑백사진을 조심스럽게 받았다. 아, 그때도 어느 이른 봄날 무렵쯤이었을까? 옷을 깔끔히 차려입은 상고머리를 한 마을 청년들이 탑 앞에 서 있었다. 석탑은 단단한 화강암으로 기단을 다지면서 첫 층 몸돌을 받치고 저 금천을 향하고 있었다. 다른 탑신과 부재들은 바닥에 놓여 있었다. 선연한 폐사지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남아 있는 탑만으로도 당당해 보였다. 전체높이가 8미터가 넘는다고 했으니, 배경이 되는 탑 하나 만으로도 사람의 키를 훨씬 넘고 있었다. 무너져 있으면서도 당당한 모습이었다. 그러니 사람들도 지지 않으려는 듯 어깨를 펴고 저렇게 당당하게 탑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 사진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사진을 보게 된 인연에 감사했다.  

고개를 들어, 아직도 봄비가 서걱서걱 내리는 밖을 바라보았다. 금천 너머에 경체정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할아버지를 보았다. 할아버지는 지금의 주암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래서 찾아오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정자에 오르게 하여 커피를 대접한다. 늘 주전자와 컵이 마루에 준비되어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고희를 지나는 지금, 혼자만으로는 이런 일들이 쉽지가 않다. 그래서 “주암정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회장 권영길, 고문 채대진)”에서 할아버지를 도와 정자를 가꾸며 힘을 보태고 있다.

 

 

 

  “능소화 피고 연꽃이 피면 이곳에서 음악회 한 번 열어요.”

 

그래, 할아버지가 선물 받은 저 두개의 조명등과 직접 설치했다는 연못의 분수로 음악회를 열어보자. 할아버지 친구들도 부르고, 이 마을 사람뿐만 아니라 현리마을과 서중마을 사람들도 초청하자. 아니 주암정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모두 함께 하는 그런 음악회 말이다. 가야금, 대금, 색소폰을 잘하는 지역의 연주자들과 소리 잘하는 선소리꾼에게 정중하고도 간곡히 부탁해보자.

 

  봄밤이 깊어가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는 산북면 서중리 웅창마을, 옛적에 웅연이라는 서원과 죽림서당이 있었던 곳, 빼어난 풍광으로 알려진 석문구곡(石門九曲) 중 이곡(二曲)의 주암이 있는 곳, 누가 돌보지 않아도 천 여 년 동안 이곳의 불국토를 꿈꾸며 하염없이 금천을 바라보던 석탑 세 기(基)가 있던 곳, 그리고 주암정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배를 닮은 바위와 정자를 가꾸며 지역문화 융성이라는 드넓은 항해를 소망하는 곳.

 

바위 위 돌단풍 꽃이 봄비에 젖어 떨고 있다. 비온 뒤 하얀 벚꽃이 저 연못에 하염없이 떨어지겠다. 웅창마을의 봄밤이 지나고 있었다.

 

  ※ 주암정 음악회는 그때부터 연꽃이 피는 7월, 연화아회(蓮花雅會)와 주암아회(舟巖雅會)라는 이름으로 코로나19 시기 이전까지 세 차례 열렸다. 다시 이곳에서 채훈식 할아버지와 주암정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뻐하는 음악회가 열리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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