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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계곡의 참수정
Date : 2021-07-13
Name : 장 선녀 File : 2021071321504129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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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계곡에서 침수정을 만나는 시간  

 

 글 이미홍

 산 속의 가을은 바닷가의 것보다 빨리 오고 더디게 간다. 해변으로 여전히 사람들이 찾아들 적에 산속의 아침과 저녁은 어느새 차가운 기운을 내뿜는다. 그러나 단풍은 아직 멀었다는 느낌으로 천천히 든 듯 만 듯 들어간다. 그러다가 어느새 온산이 물들고 큰길 도로가 가로수들이 잎들을 다 떨어뜨리고도 골짜기의 단풍들은 고운 빛깔들을 품은 채 천천히 바래져간다. 늦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고 가는 시절이 되면 깊은 계곡이나 호젓한 산길을 찾아 길을 나서곤 하는 것도 계곡에 머물렀다 가는 그 풍경들이 쌓이는 모습이 그립기 때문이다. 가을이 오는 즈음부터 하나 둘 물들어 완전히 물이 든 어느 날까지 몇 번에 걸쳐 침수정을 다시 찾았다. 계곡에 단풍이 짙게 든 옥계계곡과 침수정의 모습을 담고 싶어 그렇게 한 것이지만, 침수정이 시간 속에 천천히 깊어져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던 듯도 하다.  

 

 

 

침수정을 가는 길은 영덕IC에서 내려서 가는 길과 청송을 거쳐서 가는 길이 있다. 안동을 기준으로 보면 35번 국도에서 이어지는 당진영덕고속도로(상주영덕구간)를 타고 가다 청송IC 에서 내려 주왕산 쪽으로 향해 가는 길이다. 주왕산 입구에서 주산지 방향으로 고개길을 넘어 부동면에서 피나무재를 넘어 얼음골을 곁에서 보며 옥계계곡으로 가는 길이 제일 빠른 길이다. 옥계계곡이 막 시작되는 지점에서 침수정을 만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34번 국도를 따라 신촌을 지나 영덕에서 옥계로 가는 방법이다. 영덕읍에서 가려면 안동 방향으로 가다 신양리에서 69번 지방도를 따라 달산면으로 들어서면 달산면사무소가 나온다. 달산면사무소에서 주왕산로와 팔각산로가 갈라지는 지점에서 팔각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매일리에서부터 옥산리, 옥계리로 이어지며 옥계계곡이 펼쳐진다. 계곡을 따라 길게 이어진 계곡 정점에 침수정이 있다. 전자가 옥계의 선경이 시작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정자를 맞닥뜨리게 되는 놀라움과 탄성을 준다면, 후자는 구부러졌다 펴졌다 하는 옥계의 계곡 길을 따라 올라가며 곧 만나게 될 장소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가지게 하는 끝에 만나는 여운이 있다. 어느 길로 가든 침수정을 품은 옥계계곡의 참맛을 알려면 도로가에서 집만 보고 지나치지 말고 발품을 팔아 침수정이 있는 계곡 속으로 들어가야 할 일이다. 

 

 

 

처음 길을 나선 날은 아직 늦여름의 태양이 뜨거운 날이었다. 주산지를 지나 고개를 넘어가는 길, 과수원의 사과가 이제 막 색이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침수정 문은 닫혀 있었다. 예전에 지나다 들렀을 때는 문이 열려 있어 고즈넉한 정자 앞에 앉아 계곡 물소리를 한참 동안 듣다 간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이즈음의 침수정은 특별한 일이 있는 날이 아니면 대부분 문이 잠겨있는 듯 작은 문에 자물쇠가 달려 있다. 하여 하릴없이 담벼락을 따라 정자 주위를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맴돌다 되돌아 나와야 했는데, 정자 건너편으로 건너가 보려니 비가 온 뒤라 계곡물이 요란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아쉽게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대신 정자를 멀리 볼 요량으로 길을 아래로 내려가 낮은 다리를 건넜다. 

 

침수정을 지나 돌아든 계곡에는 물이 제법 차가운데도 따뜻한 날씨라 드문드문 물고기를 잡거나 텐트를 치고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물이 차고 시원한 바람이 많이 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피서 계곡 중의 하나로 옥계를 꼽는 이유를 알게 해주는 물빛에 햇살이다. 침수정을 산줄기와 물길이 만나지는 모습을 멀리서부터 보고 싶어 침수정이 멀어질 때까지 팔각산을 건너에 두고 동대산 자락 아래 왼쪽으로 난 길로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보았다. 이 구간은 계곡이 막혀 있지 않고 시원하게 열려 있다. 먼 곳에서부터 달려온 물길이 이곳에 이르러 천천히 풀어지며 침수정 앞에서 옥계와 하나가 되고 있었다. 다시 계곡을 되돌아 내려오며 건너가 가까이에서 침수정 정면 현판을 찍고 싶었지만 가까이서 보니 계곡물이 보기보다 많이 깊어 들어가지는 못하고 한참동안 그림 같은 풍경에 젖어 있다가 저만치서 사진 두어 장을 찍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침수정을 다시 찾아가던 날, 청송 얼음골에는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다.   

 

침수정 가는 청송 얼음골길 사진

 

 

옥계(玉溪)라는 이름은 '옥같이 맑고 투명한 물이 흐르는 계곡'이란 뜻인데, 그 이름에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맑고 깨끗한 물줄기가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을 희롱하며 휘돌아드는 광경은 장관이다. 

 

침수정은 경주사람이었던 손성을(孫星乙 1724~1796)이 1784년(정조 8)에 지은 정자로 알려져 있는데 정작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자료를 찾아봐도 잘 보이지 않는다. 생원시나 진사시에 이름이 올라있지 않다고 나와 있는 것을 보면 벼슬이나 관직에 욕심이 없이 초로에 묻혀 유유자적한 삶을 추구한 듯도 보인다. 재물에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은 전국 명승지를 찾아다닌 끝에 그가 이곳에 정자를 짓고 시를 읊으며 보냈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가 있는데, 아침저녁으로 보는 옥계의 37경 이름을 짓고 노래한 시를 남긴 것을 보면 문장에도 재주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단지 벼슬에 뜻이 없었음인지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전 신라의 최치원이 그러했듯 세상을 잊고 물소리 바람소리로 둘러친 선경에 취해 살게 된 또 다른 사연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침수정’이란 정자 이름도 그가 직접 지었는데, ‘침수정(枕漱亭)’ 한자의 의미는 ‘베개 침’에 ‘이 닦을 수’다. 중국 고사인 ‘침류수석(枕流漱石)’에서 유래한 말로, ‘물로 베개를 삼고, 돌로 이를 닦는다’는 뜻이다. 원래는 ‘돌로 베개 삼고, 물로 이를 닦는다’는 ‘침석수류(枕石漱流)’가 맞는 용어지만, 침수정과 같이 경치가 빼어난 곳에 유유자적하는 삶을 만나면서 ‘세속을 떠나 자연을 벗 삼아 사는 모습’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침수정이 앉은 곳은 팔각산과 동대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삼귀암, 학소대, 병풍대, 일월봉, 진주암 등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룬다. 부암, 구룡암, 마제석, 구정담 등 경치 곳곳에 그 이름과 얽힌 전설이 전한다. 37경의 경치와 이야기를 또한 시로 풀어내니 그 속에 옥계의 정취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 중 학소대를 노래한 시 속에 그런 정경이 잘 드러나 있다.    

 

 

 

적벽강에는 어느 날 밤에 도사가 돌아오고

소동파의 한꿈이 나에게 희미하다

학소대에 내려가 춤추니 신선이 하나 더한 것 같다

시작할 때부터 해마다 손님이 날아든다.

 

 

 

두 번째 갔을 때에는 다행히 계곡물이 줄어 정자가 있는 맞은편으로 건너가 찬찬히 누정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계곡 속에 들어서 보고서야 침수정이 왜 한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정자라고 하는지 납득 되는 기분이었다. 계곡과 정자가 한 폭으로 어우러지면서도 어느 한 쪽이 묻히지 않고 자체로 아름다웠다. 옥계의 비경 속에 침수정을 지은 손성을이라는 분의 안목에 절로 감탄을 하게 된다. 경치 좋은 곳에 정자가 자리하기 마련이고 침수정도 그런 의미에서 역시 경치가 뛰어나지만, 침수정의 진가는 옥계의 병풍계곡에 보이는 듯 숨겨놓아 그 안으로 찾아드는 혜안을 가진 이라야 그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아보도록 한 데 있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숨겨져 있다가 드러나는 정취에 새삼 놀라게 되는 곳이다.  

 

 

 

침수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아담한 정자다. 뒤편의 2칸은 방이고, 앞의 2칸은 자연 암반위에 세워진 누마루 형태이다. 여느 누정과 달리 특이하게 정자 주위로 담장을 둘렀는데, 3면에 난간을 두르고 옥계계곡이 보이는 앞을 개방해 전경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뭇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게 지나다니는 길에서 보면 담장 끝에 지붕이 보이도록 나지막하게 뒤를 두르는 대신 누정에 들면 온 산과 계곡이 한가득 눈앞에 펼쳐지도록 한 것이다. 

정자가 앉은 앞쪽은 낭떠러지여서 누정으로 들어가는 문을 뒤에 내었다. 길 아래에 안 보이는 곳에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정면에 ‘침수정’이란 편액과 중수기, 그리고 침수정을 지은 손성을이 노래한 시가 걸려있다.

 

 

만 가지 일에서 벗어나 내 몸을 정자 하나에 맡겨 두니

청정한 물소리 부딪혀 깨어져 누대 단간으로 몰려드네

용은 가는 봄을 염려해 구불구불 도사려 굴 속에 숨었고

학은 가을날 화창함이 즐거워 춤을 추니 병풍이로다

오랜 바위 위 세 마리 거북은 폭포수가 얕아질가 살피고

한가한 구름조차 여덟 모퉁이 성긴 문 위에 걸렸구나

한 평생 뜬구름같이 노을 안개 짙은 곳에 머물 적에

선계와의 참 인연인가 꿈결에서 몇 번을 깨었던고

 

 

 

옛날부터 경상도 하고도 경주사람들이 경승지를 꼽을 때 남쪽은 반구, 북쪽은 옥계라 하여 ‘남반구 북옥계’라 했다는 말이 있다. 경주사람 손성을이 옥계에 정자를 짓고 여생을 보내게 된 까닭을 되짚어보게 되는 말이기도 하다. 옥계(玉溪)는 포항시 북구 죽장면 하옥리부터 영덕군 달산면 옥산리까지의 계곡을 일컫는다. 본래 하옥리와 옥산리 모두 포항시 영일군에 속했으나, 옥산리는 생활권이 영덕 쪽에 가까워 1987년 영덕군에 속하게 되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45호로 지정되어 있는 옥계계곡은 영덕쪽의 팔각산(八角山)과 포항쪽 동대산(東大山)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산과 강이 아름다우며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특히 하천이 거대한 암반 위를 흐르며 침식작용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암석을 깎아 놓았고 또한 암반 사이를 관통하여 구비구비 협곡을 만들고 물빛과 산빛을 더해 37경의 비경을 빚어 놓았다. 그 풍경 속에 침수정이 자리하고 있다. 침수정 정자가 들어선 자리가 절묘하다. 옥계의 경관을 침범하지 않고 누정이 있음으로 오히려 계곡에 풍류와 정취를 더한다. 

 

 

침수정이 있는 자리는 팔각산이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 멈춘 산자락 끝자리이자 팔각산 산행이 시작되는 초입이라 할 수 있다. 팔각산으로 말하자면, 제 이름보다 옥계계곡의 유명세를 타고 세간에 알려졌는데, 외진 골짜기에 묻혀있던 산성계곡 골짜기를 따라 산성골이 최근 산행 길로 반듯하게 정비되고서야 팔각산이라는 제 이름을 제대로 알릴 수 있게 되었다. 옥계계곡과 산성계곡, 두 개의 비경을 품은 팔각산은 소설악으로도, 동해의 금강산으로 통할만치 경치가 빼어난 영덕의 숨은 명소라 할 수 있다. 특히 산 속의 오지마을 산성리를 지나는 산행 길은 오랫동안 산속에 고이 묻혀 있었던 만큼 때 묻지 않은 순정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 등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침수정을 뒤로 하고 길을 따라 내려가다 옥산리에 이르러 산성계곡 생태탐방로가 있는 곳에 차를 세우고 잔잔히 물줄기가 이어지는 왼쪽 데크길을 따라 들어가면 얼마 안가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를 만날 수 있다. 산성계곡 생태공원 주차장에서 곧장 이어지는 소나무 생태숲길을 지나 출렁다리로 가도 좋지만 옥계계곡이 산성계곡과 만나는 장면을 제대로 보려면 계곡 쪽으로 난 데크길로 가야 그 느낌을 제대로 만날 수 있다. 조금 더디더라도 길을 질러가지 않고 돌아가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뜻하지 않는 경치를 만나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법이다. 

 

 

코로나를 피해 한적해진 계곡에서 노니는 사람들 목소리를 들으며 옥산리의 자랑거리이기도 한 마을숲을 통과해 옥계에서 산성계곡으로 이어지는 출렁다리를 건넌다. 산성계곡 생태공원은 옥산리 마을숲과 버려진 농지를 자연친화적으로 복원한 곳으로 마을숲으로 연결되는 출렁다리는 산성리로 들어가는 길목이기도 하면서 팔각산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하산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다리를 건너면 또 다른 비경을 숨겨둔 산성계곡으로 골짜기가 길게 이어져 있다. 계곡이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에 또 다른 계곡을 안고 있는 옥계는 그래서 물길이 마르지 않고 그 산과 골짜기에 터를 잡고 사는 마을과 사람들을 품는다. 

 

 

 

갈길이 멀어 산성계곡 입구에서 다음을 기약하고 발길을 돌려 나오는데 소나무숲 가운데 금줄이 처져 있는 당집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숲에 새로 개장한 네트어드밴처를 찾는 방문객들을 위해 나와 있다는 옥산리 마을 어르신이 이곳은 오래 전부터 마을에서 동제를 지내온 당숲으로, 지금도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당집 주위로 금줄을 치고 동제를 지내고 있다고 알려준다.   

 

 

계곡물이 기암괴석 그림자를 물속에 비추고 물소리가 계곡을 따라 울리는 여름에 영덕의 바다를 지나 옥계를 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가을이 푹 무르익은 늦은 가을 날 옥계계곡으로 길을 나서보기를 권한다. 개인적으로 추천을 하자면 옥계로 가기 전 부동면의 길목에서 주산지를 들러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한번쯤은 피나무재 넘어 청송얼음골을 지나 가을산들이 빚어내는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빛깔의 좁은 길을 따라 옥계의 침수정을 만나러 가라고 말하고 싶다. 옥계로 향하는 그 길은 산도 바위도 과하지 않으면서 빼어나다. 굽이굽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며, 가늘어졌다 넓어지기를 반복하는 계곡의 물길을 따라 사는 사람들의 마을에 온기를 더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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