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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산 의병활동(義兵活動)
Date : 2020-06-01
Name : 장 선녀 File : 2020060120231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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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산 의병활동(義兵活動)

 

글 김범선

  

  

“장군님, 빨리 몸을 피하시죠!”

“조금만 더 버티자.”

“여기 있으면 다 죽습니다요, 일월산으로 가시죠.”

“일월산? 거긴 낯선 곳이라...”

 

신돌석 장군은 망설였다. 일월산은 영양군 일월면과 봉화군 재산면이 접한 해발 1219m의 험준한 산이다. 

신돌석 장군은 신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백암산 전투에서 패해 수비로 후퇴했다. 장군 수하의 의병 300명은 이젠 100명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중화기로 무장한 일본군의 추격이 시작되자 다급해진 부장 윤돌암이 일월산으로 후퇴하자고 했다. 

 

신돌석 장군은 영덕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일제의 강권으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무력으로 일제와 싸울 결심을 하고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의병 300명으로 영해와 울진, 평해에서 일본군과 싸워 큰 전과를 올렸다. 신돌석 장군은 휘하에 의병 3천명을 거느린 무적 대군의 수장이었다. 그러나 백암산 전투에서 패하자 그의 수하인 윤돌암은 일월산으로 군영을 옮기자고 했다. 

윤돌암은 일월산 오리동(梧里洞)이 고향이었다. 그는 원시림의 바다인 일월산을 손바닥처럼 잘 안다고 했다. 

 

“일월산 어디로 가잔 말이냐?”

“오리로 가면 됩니다.”

“오리로 가면 대군이 주둔 할 수 있겠느냐?”

“거긴 천혜의 요샙니다.”

“요새라고?”

“높은 산에 지형이 험하고 원시림으로 일본군이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사진. 영양군 제공

 

신돌석 장군은 부장 윤돌암의 조언에 따라 대군을 이끌고 지금의 917번 지방도를 따라 수비면에서 일월면 오리로 이동하여 처음에는 왕바우골에 야영하였다. 왕바우골은 배나무골 최북단으로 큰 바위가 있어 그렇게 불렀다. 그러나 신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의 추격이 계속되자 신돌석 장군과 의병들은 신기(新基)에 주둔하였고, 그곳에서 군량을 축척하고 전선을 재정비 하였다. 신기(새터)는 신돌석 장군이 의병활동을 하기에는 좋은 조건을 가진 곳이었다. 이곳 주민들의 대부분은 *임오군란으로 은거해 있던 구식군대 출신 군인들이었다. 더욱이 주변의 답촌은 논이 많아 양식이 풍부해 대군이 주둔하기에 좋았다.

 

그럼에도 백암산 전투에서 일본군에 패한 신돌석 장군은 화승총과 천보총으로 무장한 의병이 38식 소총과 대포로 무장한 일본군과의 전면전은 불리하다는 것을 알았다. 

화승총은 총신에 화약과 탄알을 넣고 점화구에 불을 붙여 사격하는 소총으로 최대 사거리가 120m, 천보총도 사거리가 1000보로 유효사거리는 이 보다 훨씬 짧았고 더구나 비가 오거나 습기가 찬 날에는 쓸 수가 없었다. 일본군의 38식 소총은 유효사거리가 460m에 탄알을 쓰기 때문에 날씨와 관계가 없었다. 그래서 신돌석 장군은 전면전을 피해 일월산 신기로 군영을 옮긴 후에는 게릴라 전법으로 작전을 변경하였다. 

 

신돌석 장군은 평해에서 주둔하던 일본군 일개 중대가 의병을 추격해 수비면 본신 계곡에 진입하자 매복을 해 있던 의병들에게 명령했다.

 

“공격하라!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전부 죽여라!”

 

  사진. 영양군 제공

 

의병들은 화승총과 활과 장검으로 일본군 일개 중대를 공격했다. 일본군은 협곡에서는 사거리 460m의 소총과 대포도 소용이 없었다. 신돌석 장군은 일월산의 험준한 지형과 지물을 이용하는 매복으로 일본군의 중대를 전멸시켰다. 신돌석 장군과 의병은 그때부터 대규모 병력으로 일본군과 전면전을 펼치는 작전에서 소규모 병력으로 영해와 울진, 평해와 삼척까지 수시로 공격하고는 일월산으로 사라졌다.

일본군 지휘부는 대대급 병력으로 일월산 의병을 토벌하러 출동했다. 그들은 지금의 88번 국도와 917번 지방도를 따라 진격했다. 수비면에서 부터 산악지대에 진입하자 매복해 있던 의병들은 수시로 일본군을 공격하고는 일월산으로 사라졌다. 험준한 원시림으로 살아진 의병을 추격하던 일본군은 치고 빠지는 의병들의 공격에 쓰러져 병력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일본군 지휘부는 일월산에서 험준한 지형지물을 이용한 의병들의 매복과 게릴라식 전법에 걸려들어 당해낼 수 없었다. 신돌석 장군의 의병은 나날이 병력이 늘어나고 군세가 강해졌다. 

 

일본군 지휘부는 일월산 전투에서 더 이상 의병을 이길 수 없다 판단하여 군사작전을 중지하고 작전을 변경하였다. 그의 고종사촌 동생인 김자성을 매수한 것이다. 김자성은 사람이 간악하고 교활해 신돌석은 그를 측근으로 두지 않았다.

그런데 추운 동짓달 열여드래날 아침, 고종사촌 동생 김자성이 일월산 신기로 장군을 찾아 왔다.

 

“너, 여기까지 웬일이냐?”

“형님, 오늘 밤 백부님 제삽니다. 그래서 모시러 왔지요.” 하고 대답하며 말고삐를 내밀었다.

“참 그렇구나, 군영일이 바빠서 잊고 있었네.”

신돌석 장군은 오랜만에 만나는 고종사촌 동생을 반가워하며 서둘러 영해로 길을 떠났다. 하지만 그날 밤 동생이 준 독주에 대취해 잠이 든 장군은 거액의 현상금을 노린 고종사촌 동생 김자성에게 살해당했다.

 

 

신돌석 장군이 타계하고 일월산 의병은 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의 대규모 토벌로 전멸하였다. 지휘관을 잃은 의병들은 군령이 서지 않아 모두 도망치고 뿔뿔이 흩어졌고, 의병들의 게릴라 전법에 치를 떤 일본군 지휘부는 의병들의 근거지인 일월산을 초토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소총과 대포로 무장하고 왕바위와 답신, 노루모기와 신기에 은거했던 구식군인들의 가옥을 불 지르고 사람들이 살수 없도록 완전히 초토화시켰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산짐승들에서 가축들까지 모두 잔인하게 죽이고 생명이 더 이상 살 수 없도록 완전히 폐허로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신돌석 장군과 구식군인들의 일월산 의병활동은 어떠한 기록과 유적도 남아있지 않다. 다만, 한말 일월산 신기(새터)를 근거지로 한 의병들의 활동이 구전으로만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구도실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도 밝은 보름달이 서쪽으로 기울고 검은 밤하늘에 은하수 잔별이 흩어지게 웃을 때 의병기를 앞세우고 어께에 화승총을 맨 의병들이 동쪽에 왜구들을 공격하기 위해 씩씩하게 행군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고 한다. 

 

 *임오군란(壬午軍亂) : 조선시대, 1882년(고종 19) 6월 9일 구식군대의 군인들이 일본식 군대인 별기군(別技軍)과의 차별 대우와 밀린 급료에 대한 불만을 품고 일으킨 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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