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보산의 숲길을 걷는 시간 (Ⅰ)

글 이미홍

코로나로 인해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던 ‘거리두기’가 해제를 앞둔 무렵, 가는 봄을 아쉬워하며 칠보산으로 가기 위해 7번 국도를 따라 길을 나섰다. 시원한 바다와 초록의 잎들이 뿜어내는 생명력을 만나고 싶었고, 다른 무엇보다 산중에서 무심히 초록의 정점을 향해 가고 있을 칠보휴양림의 숲길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칠보산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지만 어디에서 접근하든 동해안을 따라 이어진 7번 국도를 타고가다 숲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영덕에 바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물 같은 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길이기도 하다.

‘산’ 은 필연적으로 숲을 품는다. 나무와 풀이 연대해 숲을 이루고 깊은 산 속에 자리 잡은 아름드리 송림이 우거진 숲은 우리에게 깊고 서늘한 그늘을 선사한다. 삶에 부대끼고 지칠 때면 그 그늘 속으로 들어가 온전히 나를 내려놓고 싶게 만드는 곳이다. 깊은 산 숲속에 쉬어갈 수 있는 쉼터를 마련하고 ‘휴양림’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일 것이다. 휴양림이라는 이름에서 한 글자를 꼽자면 단연 숲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쉴 ‘휴(休)’ 가 아닐까 한다. 산에 간다고 하면 보통은 정상까지의 산행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휴양림에 간다고 하면 숲속 캠핑장에서 야영을 하거나 숲길을 산책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휴양림이라 쓰지만 숲이라 읽는다.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 안에 있기만 해도 쉼이 되는 곳, 숲은 그렇게 우리를 편안하게 해준다. 사람들이 휴양림으로 가는 이유다. 

숲길

칠보산 자연휴양림에 가려면 먼저 산 아래 마을로 들어가야 한다. 산은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칠보산은 울진과 경계를 이루며 병곡면의 영리와 금곡리, 거무역리와 아곡리와 백석리에 걸쳐 형성되어 있다. 병곡 땅을 한 바퀴 휘휘 돌아 내려가며 마을을 품고 있다. 이 마을들은 조선시대에는 영해부에 속했고, 대한제국 시기에는 대개 영덕군 북이면(北二面)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영덕군 병곡면에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은 시절 따라 바뀌었지만 칠보산 아래 터 잡고 사는 사람들의 삶은 한가지였다. 마을을 감싸고 산줄기가 계곡을 따라 이 골 저 골, 산 아래 마을로 이어진다. 

그 중 칠보산의 중심을 이루는 곳은 영리와 금곡리로, 휴양림이 자리한 병곡면 칠보산길 587번지는 동리로 치자면 영리에 속한다. 그렇지만 지도상으로 보면 칠보숲길이 실상 영리와 금곡리에 걸쳐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리는 칠보산의 남쪽과 서쪽 끝자락에서부터 능선을 타고 산 정상으로 이어지고 금곡리는 동쪽과 북쪽 끝자락부터 골짜기와 어우러지며 산세를 형성하고 있다. 산으로 들어가는 지도의 시작과 끝에 영리와 금곡리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이 지도상에 그어놓은 선일뿐 숲에는 경계가 없다. 

영덕 방면에서 처음 만나는 휴양림 길은 영리에서 가는 길이지만, 길 안내지도는 영리 대신 금곡리길을 안내한다. 영리길이 숲 여행을 하기 에는 더없이 좋은 정감 가는 길이지만, 아스팔트 포장된 2차선 길이 아니라 얼마간의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외통수길이라 금곡리길에 비해 덜 알려진 이유이기도 하다. 초행길이거나 접근하기 쉽고 시야가 트인 시원한 길을 선호한다면 금곡리 길로 가야 한다. 봄이면 벚꽃이 터널을 이루고 가을이면 능선을 따라 단풍이 물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영리와 백석리를 지나 울진 방면으로 7번 국도를 따라 가다 보면 왼쪽으로 칠보산 능선이 길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대진해수욕장과 고래불해수욕장을 지나 칠보산휴게소가 보이는 지점에서 오른쪽 바닷가 방향으로 내려가 지하도를 건너면 바로 보이는 마을이 휴양림으로 이어지는 금곡리다. 금곡리는 바다가 지척이라 예부터 후릿그물로 고기를 잡던 곳이라 하여 그무실 또는 망곡(網谷)이라 불리기도 했다. 바다를 두고 그냥 산속으로 들어가기가 왠지 허전하다면 잠시 멈춰 서도 좋다. 울진 방면 교각 아래를 지나 건너편으로 길을 돌아 내려가면 바로 앞에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언덕 아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칠보산을 등 뒤에 두고 바다를 품고 있는 마을, 금곡2리다. 

숲길

금곡리 초입에서 군도(郡道)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면 유금사(有金寺)와 칠보산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안내판이 나온다. 휴양림으로 가는 길을 낸다고 동네 길을 번듯하게 넓히거나 표지석을 크게 세우지 않고, 소박한 갈림길 풍경과 담벼락에 기대 세운 표지판이 왠지 모르게 편안함을 준다. 길도 마을과 산의 풍경에 그대로 녹아들어 어색함이 없이 이어진다.

해거름에 뉘엿뉘엿 산허리를 넘어가는 해를 보며 산 구비를 오른다. 다 올랐다 싶을 즈음 오른쪽으로 유금사로 가는 길이 보인다. 시간이 늦어 유금사는 나중에 보기로 하고 왼쪽으로 길을 잡아 휴양림 길로 들어선다. 길가에는 늦게까지 남아있는 산벚꽃과 여름을 알리는 이팝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잘생긴 소나무들 뒤로 산그늘이 드리운다. 여기에서도 한참을 더 산속으로 들어가서야 휴양림 정문 안내소가 나오는 이 길은 말 그대로 사람이 사는 마을을 지나 숲속 세상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휴양림사진

그 속에 발을 디디는 것만으로도 다른 세상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장소로는 단연 ‘숲’이다. 칠보산 자연휴양림은 등산과 숲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는 숨은 명소로, 요란하게 꾸미지 않아 소박하고 정갈한 느낌이다. 숲속에 쉬어가는 집도 자연에 크게 거스르지 않게 짓고, 숲길도 인위적으로 다듬기보다 자연 그대로를 살려 길을 내었다. 해가 넘어가고 숲에 저녁이 내리는 시간, 숲속휴양관 옆으로 나있는 작은 숲길을 걷다말고 쉼터 돌의자에 앉아 눈을 감으니 온 세상이 고요하다. 시끄러운 세상소리가 멀어지고 투둑 나뭇가지 떨어지는 소리와 새소리만이 남는다. 해가 저물고 더 이상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 시간, 산속의 밤이 짙게 내려앉는다.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아 일상에서도 자유로운 밤, 숲속에 누워 숲이 내는 소리를 듣다 잠이 들었다. 

숲길

휴양림에 묵는 이들 중에는 칠보산 등산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도 많다. 그래서 휴양림의 아침은 산행을 서두르는 이들의 두런거리는 말소리와 멀어지는 발소리가 잠을 깨우기도 한다. 멀어지는 발소리와 함께 새소리가 숲의 아침을 깨우는데, 아침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서 숲을 정비하는 기계소리가 하나 둘 들려온다.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그동안 의도치 않게 소홀했던 숲에 사람의 손길이 더해지고 있는 참이었다. 

초록이 싱그러운 숲에 조금 더 머물고 싶었던 나는 짐을 정리해놓고 천천히 숲길을 걸었다. 그전에 올랐던 산림문화휴양관 옆으로 올라가는 숲길 대신 목교를 건너 옥잠화와 원추리라 이름 붙여진 숲속의 집들 사이로 숲길산행을 시작한다. 등운산 등산로로 이어지는 왼쪽 길 대신 원추리 동을 지나 목교를 건너 해넘이쉼터에서 숨을 고른다. 임도를 만나 등산로로 연결되는 길이기도 하다. 정상으로 이어진 임도를 비켜 간간이 꽃잎도 흩날리고 솔향기가 은은히 스며드는 칠보숲길을 따라 걷다 뫼돌솔쉼터와 버들평지쉼터를 만난다. 뫼돌솔, 버들평지, 그 이름처럼 어른 같은 소나무가 내려다보는 이곳은 둥글둥글한 돌과 숲을 닮은 나무등걸 표지석이 정감을 더한다. 고단한 인생길, 이 숲길에서 잠시 쉬어가라고 내어준 지극히 소박한 돌과 나무와 길 앞에서 절로 조심스러워지고 겸손해지는 동안 숲의 향기가 온몸에 내려앉는다.  

숲길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숲에서는 생명과 그늘이 서로 통한다. 새잎을 싹틔우고 꽃을 피워내는 봄의 생생함과 열매를 맺기 위해 녹색으로 물들어가는 그늘의 시원함이 공존한다. 여름으로 가는 숲은 그렇게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초록의 낙원을 펼쳐 보인다. 세월의 더께가 고스란히 배어든 송림 사이로 햇빛과 바람이 지나고, 떡갈나무와 박달나무가 어우러진 길을 지나면 굴피나무 군락지를 만난다. 든든한 참나무가 지키는 숲길을 따라 가노라면 간간이 흰 꽃이 수수한 이팝나무며, 동화 ‘혹부리영감’에서 도깨비들이 열매를 깨무는 딱! 하는 소리에 놀라 도망갔다는 개암나무가 보이고, 또 계곡 따라 길 따라 진달래와 수달래가 사이사이 얼굴을 내밀며 숲에 고운 빛깔을 더한다. 

숲길을 걷노라면 모든 것을 내어주고 길게 누운 빈 등걸들도 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싹을 내밀고 올라오는 숱한 어린 생명들을 만난다. 숲은 잠시도 쉬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에 분주히 생명을 피워내며 순환한다. 자연의 법칙에 충실할 뿐 욕심도 경계도 없기에 숲은 내어주고도 넉넉하다. 숲길을 걷는 이들의 발걸음을 방해하지도 않고, 시위하지도 않으며, 모퉁이를 돌면 쉴 곳도 내어준다. 산림휴양관을 감싸며 숨은 계곡과 골짜기를 끼고 칠보산 안을 완만하게 가로지르는 칠보숲길은 울퉁불퉁하지 않고 나뭇잎 냄새가 배인 부드러운 흙길이어서, 천천히 걷다보면 사람을 위로하고 쉬어가게 한다. 

숲길

그 숲길 끝에 해돋이 전망대가 있다. 하산하는 이들이 능선의 끝에서 감탄을 터뜨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멀리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고래불해수욕장의 등대가 보이고 해변을 따라 저 멀리 고래불해수욕장의 송림이 아스라이 길게 펼쳐져 있다. 휴양관 앞 칠보정에서 대진해수욕장이 잘 보인다면 해돋이 전망대에서는 고래불해수욕장 앞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어느새 무성해진 나뭇잎들이 더러 바다를 가릴 때도 있지만, 산이 바다를 향해 달려가다가 급하게 멈춘 자리, 그 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를 향한 연모를 가리지는 못한다. 흐리거나 비가 오면 푸른 동해 바다를 만나기 힘들지만 운이 좋은 날이면 꽹하게 파란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내가 찾은 날은 미세먼지가 푸른빛을 다소 가리긴 했지만 다행히 바다를 보기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새해 첫날이면 해돋이를 하는 장소이기도 한 전망대는 바다를 향해 열린 공간이면서 자신이 칠보산 끝에 서 있음을 체감하게 하는 자리다. 목은 이색의(牧隱 李穡, 1328~1396)의 『영해를 그리워하며』를 만나는 자리이기도 하다. 

영해를 그리워하며 (憶寧海) 

외가댁은 적막한 바닷가 마을에 있는데

풍경은 예로부터 사람들 입에 올랐었네

동녘 바다를 향하여 돋는 해를 보려하니

갑자기 슬퍼 두 눈이 먼저 캄캄해지누나

황량한 마을에 하룻밤 단란히 묵으면서

젊은 시절 회포를 세세히 논해보지 못하였는데

회상컨대 몇 년 사이 선배들은 다 떠났고

아침 까치 지저귀더니 어느덧 또 황혼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