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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마을의 “건축학개론”
Date : 2024-06-28
Name : 장 선녀 File : 2024062815120256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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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마을길 걷기

 

 

산골마을의 “건축학개론” – 낙동강 기슭의 산골마을길 걷기

 

 

글, 사진 엄의식

  

 

소천면소재지 - 현동역 – 암돌마을 – 연남마을(숫골) – 황목(수안골. 숲안골) – 풍애리 – 분천역 - 소천면소재지

 

현동대교 가는 길에 보이는 낙동강 풍경

 

 

강기슭의 ‘산골마을’이란 표현이 어폐가 있는 말로 들리지만 강이 산을 안고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 상류에는 자연스런 말이다. 외진 산속 사이를 비집고 흐르는 강을 따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에는 마을이 생겼으나, 경작지가 넓거나 풍족하지 않으니 권세가가 들어설 만한 입지는 되지 못하고 자연스레 서민들만이 모여 살게 된 것이다.

 

앞서 소개해 드린 〈법전 – 조래마을〉구간의 번듯한 한옥들과 정자, 이 구간의 마을에는 소위 권세가들의 자취와 그와 대비되는 일반 대중의 삶을 같이 엿 볼 수 있는 반면 대부분의 마을에는 번듯한 한옥 고가 없이 서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이 지역 전통 서민주택으로는 ‘도토마리집’과 ‘까치구멍집’이 있는데 이를 한곳에서 볼 수 있는 마을이 있다. 봉화군에는 경상북도 지정 문화재인 서민가옥이 네 곳이 있는데, 설매리의 겹집과 까치구멍집, 분천리의 도토마리집과 까치구멍집이다. 그 중 분천리의 두 집이 모두 황목 수안골에 있다.

 

*다리를 나누어 쓰는 마을 

출발점인 소천면 소재지인 현동리에서 난간이 없는 잠수교 형식의 다리 2개를 건너 암돌마을과 연남마을(숫골)을 지나면 이끼 낀 돌담 안에 있는 멋진 성황당이 반기는 황목 수안골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서 길을 따라 산을 넘으면 강변의 사과밭 풍광이 아름다운 풍애리를 만나게 되고, 세 개의 다리를 건너면 분천역에 이르게 된다. 과거 다리가 없던 시절, 풍애리로 들어가는 길의 낙동강에 비가 많이 오면 강폭이 넓어지고 깊어져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을 넘어 수안골을 지나 2개의 잠수교를 건너다녔다고 한다. 그러다가 2000년도 이후에 풍애리에는 다리 3개가 제대로 만들어졌지만, 수안골로 가는 두 개의 다리는 아직 잠수교의 형태라 큰 물이나면 다리가 잠긴다. 때문에 지금은 수안골 사람들이 풍애리의 마을 다리를 이용하고 있다. 다리를 빌려주다 이제는 빌려쓰는 형편이 되었지만 이제 각자 도생의 길이 곧 열리게 된다. 암돌마을 가는 길의 다리 2곳을 새로 건설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소천면소재지에서 암돌마을로 가는 길에 무인역인 현동역이 있다. 역 주변에 흔히 있는 가게는 커녕 인가 하나 없는 곳에 역은 강 따라 나 있는 좁은 길을 향해 있다. 역 뒤편으로 옛날 보부상들이 소천장을 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넘던 고개라 하여 이름 붙여진 막지고개에 인가가 조금 있다. 현동역은 ‘외씨버선길’ 코스 중 하나로 한때 역을 지나 철길을 횡단하여 지나다닐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안전 예방조치로 막혀있다. 또 ‘시(詩)가 있는 무인역’을 표방하여 대합실 내에는 많은 시집과 앉아 읽을 수 있는 시설이 있었으나 그 또한 지금은 문이 닫혀 있다. 긴 대합실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고 사색하던 추억이 새록한 나에게는 이래저래 씁쓸하고 아쉬울 따름이다.

 

현동역을 지나면 강을 두 번 건너 암돌마을에 진입하게 되는데 현재 잠수교 형태의 다리가 안전한 상시 통행을 보장하는 다리로 건설되고 있다. 

 

 

 

이 두 다리가 완공되면 예전과는 반대로 풍애마을로 산을 넘어가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다리를 건너면 암돌마을(암호동)이 나온다. 마을 이름의 유래를 숫돌에 대비되는 암돌이 있는 마을이라고 추측했으나 마을 곳곳에 크고 작은 돌이 많아서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돌을 안고 돌아 갔다하여 암돌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암돌마을에서 내를 따라 산모퉁이를 돌면 비교적 넓은 경작지와 연남마을을 만날 수 있는데, 길가에 남아있는 몇 그루의 소나무가 멋진 입구를 만든다. 거기서 좁은 길을 더 오르면 예전에 폐교된 황목분교 자리를 지나 황목 수안골에 이른다. 이끼 낀 돌담과 오래된 전나무, 다래나무, 말채나무와 느릅나무 등에 둘러싸인 잘 생긴 성황당이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다. 우람한 전나무가 숫서낭당임을 말해주며, 돌담에 있는 다래나무는 수령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것으로 서낭당목으로 다래나무가 있는 것은 매우 희귀한 경우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성황당과 서낭당은 지역에 따라 같은 의미로 혼용이 된다고 하는데, 일부는 단순 돌무더기를 서낭당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 황목마을에는 당집이 있고 그 안에 ‘성황신위’가 모셔져 있는 성황당이다. 비록 소박하지만 관리가 잘 되어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니 척박한 삶 속에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산골 주민들의 애절함이 배어나와 괜스레 짠한 마음이 듦과 동시에 한편으로 도시의 화려하고 거창한 종교 시설들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나 어찌 보면 요즘의 구복이 예전의 구복보다 더 어렵고 고차원일 수도 있기에 기도처의 외형과 개인의 소망에는 상관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황당 근처에 이번 마을길의 유일한 한옥정자 한 채가 있다. 약 300년 이상 되었다는 반송을 배경으로 두고 지어진 거의 유일한 십자형 정자인 침산정이다.

 

 

안내판도 없고 정자를 둘러싼 담장과 닫혀 있는 문으로 외부에서 둘러 볼 수 밖에 없는데 ‘봉화문화유산지킴이’를 자처하는 진성 방유수님에 의하면 침산정은 1947년 김녕김씨 암돌문중의 김진섭씨가 건립하였다고 한다. 봉화군에서는 비지정문화재로 분류하여 2015년 현재의 담장을 포함해 수리하였고 현재 이 건물의 소유주는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정자를 세우는 것이 단순한 건물 하나 짓는 것 이상의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라 단순히 돈이 있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라던 법전 강씨 문중 분의 말이 생각났다. 비지정문화재이긴 하나 서 있는 곳이 황목 숲골을 내려다보는 좋은 위치 일 뿐 아니라 정자 가까이에 반듯한 반송 또한 멋지게 어울려 당시 가문의 명망을 짐작케 했다.

 

침산정을 돌아 나와 조금 올라가면 수안골(숲안골)이 시작되는데, 1994년도 『경상북도 문화재 지정보고서』에 의하면 숲골 및 수안골에 각각 20여 호가 있었다고 한다. 수안골에서 만난 할머니 말씀으로는 귀촌 귀농한 이들로 현재 가구 수는 늘어났다고 한다. 

 

*도토마리집

 

마을 입구에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도토마리집이 얌전하게 단장되어 있다. 도토마리는 도투마리의 사투리로 베틀의 한 부분이다. 실을 감아놓은 H형 널판지로 손으로 양쪽의 널빤지를 돌려가며 베를 짤 때 쓰인다. 김홍도의 길쌈그림에도 도토마리가 나와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집 평면이 부엌을 중심으로 좌측이 안방, 우측이 외양간과 사랑방의 대칭인 까닭에 도토마리집이라고 불린다. 도토마리집은 안동 도산서원 남쪽을 흐르느 낙천 건너 의인 섬 마을에 네 채가 있었으나 한 채만 안동민속경관지(안동민속촌)로 옮겨지고 나머지는 안동댐 건설로 인해 수몰되었다. 또한 하회마을에 있던 한 채는 화재로 소실되었고, 그나마 황목에 있던 두 채 중 한 채는 철거되어 현재 봉화에 있는 도토마리집은 제자리에 남아 있는 유일한 사례라고 한다.

 

<사진_도토마리>

 

<사진_김홍도 길쌈>

 

 

 

“경북 안동지방 민가의 특이한 양식으로 외양간, 부엌, 안방, 윗방의 순서로 형성된 일자형의 보편적 소농가의 경우보다 간략한 구성을 보이는 초가집으로 외양간 관리, 겨울철 보온관리에 효율적인 주거형태”라고 한다.『출처 : 두산백과사전』 

 

정면 대문을 열면 봉당과 부엌이 있는 구조로 같은 겹집인 까치구멍집의 공간 확장과 연관이 있다고 본다. 각 방의 천장은 고미반자인데 이는 지붕의 서까래 아래 살림집 구들방 천장을 말한다. 서까래와 천장사이의 삼각 공간을 더그매라 부르며, 살림살이 등의 수장 공간으로 사용했다. 

 

<사진_외양간과 사랑방천장 사이에 보이는 더그매>

 

*견적은 안 나오지만 그래도 이루어 지는 삶 & 아들3 < 딸1

도토마리집을 구경하다 이 마을에 50년째 살고 계신다는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었다. 예전에 어찌 사셨는지를 물으니 “계란 며루치 못 먹고 살았다.”고 하신다. 논이 없으니 작물은 콩, 옥수수, 보리, 감자 등이 주곡이었고, 바깥양반은 30년 전에 돌아가셨으며 시부모와 3남 1녀를 돌봤다고 하신다. 자녀 넷을 모두 고등학교까지 공부시켰는데 그 중 둘은 영주, 봉화에서 학교를 나왔다. 전기는 80년대 후반에 들어왔고 비료를 사려면 아침 먹고 8키로를 걸어 현동 농협에 가서 사야 했는데, 당시 25kg 한 포대를 이고 집에 오면 저녁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 따져 보면 도저히 계산이 안 나온다. 견적을 낼 수가 없는 형편이다. 자녀들을 영주, 봉화에서 유학 시키는 것은 돈이 엄청 들어가는 일이다. 그 때의 고생으로 지금은 모두 자리 잡고 잘 살고 들 있다고 하시는데, 정작 지난한 세월을 걸어온 할머니는 그 대가로 몸 여기저기가 불편하신지 거동조차 힘들어 보인다.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님도 우리들을 그렇게 키우셨다. 조금 더 나가면 6.25 종전 70년간의 대한민국도 도저히 견적이 안 나오는 상황에서 오늘날의 우리나라를 만들었다. 그 덕에 살만해진 우리 아이들 세대는 또 다른 의미로 자식교육에 올인한다. ‘소황제’를 만들려 하니 돈과 노력이 너무 들어 아예 결혼을 안 하거나 애를 낳지 않기로 하여 출산율 0.7의 신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 걱정은 하지 말자, 이집트 피라미드에도 “요즘 젊은 애들 버릇이 없다”고 한탄하는 글이 있다지 않은가? 이집트 이후 오늘 날까지 살고 있지 않은가? 걱정과 기우는 일은 안하는 혹은 못하는 나이 든 이들의 몫 일 뿐이다. ‘어찌되었던 세상은 돌아간다.’

돌아서려는데 할머니가 덧붙이신다. 

잘못했어요, 딸 하나 더 낳을 껄 그랬어요.” 

아니 아드님 세분에 따님도 계신데…

딸이 너무 멀리 살아서 자주 못 봐요.

아드님들은?

그나마 막내가 일주일에 한 번 전화하고, 다른 애들은 아주 가끔. 아들들은 소용없어요.

딸이 없는 부모들에게 위로를 보내며 아들들이여, 반성합시다.

 

*까치구멍집

도토마리집에서 조금 올라가면 까치구멍집에 닿는다. 도토마리집과는 달리 새로 단장을 하지 않아 옛집 냄새가 더 진하다. 특이한 것은 집 입구에 돌로 쌓은 화장실인데, 얼핏 보기에는 도산서원에 있는 또아리 화장실처럼 생겼으나 입구를 제외하고 돌을 둥그렇게 쌓아올려 마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같은 방향에 출입구가 개방된 채로 나있다. ‘예전에는 무언가 가림막이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_까치구멍집>

 

“까치구멍집이란 안방, 사랑방, 부엌, 마루, 봉당 등이 한 채에 딸려 있고, 앞뒤 양쪽으로 통하는 양통집의 속칭으로 주로 경북지방에서 쓰이는 말이다. 태백산맥 일대에 특히 안동, 영양, 청송, 영덕, 울진, 봉화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일종의 겹집 모양으로 구(口)자형의 집이 축약된 듯한 폐쇄형 가옥이다. 정방형의 넓이를 아홉 구역으로 나눈 정(정)자형처럼 구획되어 각각의 기능을 하도록 된 것이 특징이다. 지붕 용마루의 양쪽에 공기의 유통을 위하여 구멍을 낸 모양이 까치둥지와 비슷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한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주택을 평면구성으로 볼 때 외통집· 양통집· 곱은자집· 겹집으로 나눌 수 있다. 양통형 집은 안동지방뿐 아니라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동해안 산간지방에서 아직도 많이 볼 수 있는데, 구조가 한국집의 고대양식이라는 점에 특별한 의의를 가진다.” 『출처 : 두산백과 두피디아, 한국민속대백과』

출처 : [네이버지식백과] 까치구멍집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및 한국민속대백과 

 

 

<사진_11/ 마루와 부엌 부뚜막 사이에 구멍을 내어 만든 광명대, 관솔불을 지펴 조명과 불씨를  간수했다.>

 

까치구멍집은 산곡에 자리 잡고 있어서 집 짓는 재목의 취득이 용이하여 사용된 재목들이 튼실하고 후하다. 신리의 너와집도 겹집으로 까치구멍집과 구조는 비슷하나 다만 지붕재로 소나무를 잘라 만든 너와를 사용하는데 차이가 있다 

 

 

집 안을 둘러보니 엄동설한에 판자 사이로 들어오는 매서운 겨울바람을 어찌 견뎠을까 싶다가도 방은 흙벽이고 고미반자의 낮은 천장으로 비교적 따뜻하게 겨울을 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이 집은 문화재 보수 시에 부뚜막을 없애 버린 것으로 보이는데, 집 안에 난방이나 취사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없다. 어떠한 사정으로 그렇게 보수가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외양간과 부엌의 공존

도토마리집과 까치구멍집의 공통점은 폐쇄적 구조로 한 지붕아래 외양간까지 같이 있다는 점인데 특히 외양간이 부엌과 마주하는 위치에 있어서 위생문제에 대한 염려가 있을 수 있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특히 아이를 마치 무균실에서 키우듯 하는 요즘 젊은 부모들은 기절할 노릇이겠다 싶다. 그러나 Farmacology [(Farmacology : Farming 농업+Phmarcology약리학+Ecology생태학),『땅이 의사에게 가르쳐 준 것』, 출판사 시금치, 2015]란 신조어를 제목으로 출간한 저자 캘리포니아대 가정의학과 교수 대프니 밀러(Daphne Miller) 박사에 의하면 결과는 완전 다르다. 알프스산의 목장에서도 겨울에는 건물 아래층을 외양간으로 사용한다. 책 중에 나오는 알프스 농촌지역과 도시지역 아이들의 천식 등에 관한 독일 에리카 폰 무티우스(Erica von Mutius) 박사의 연구는 매우 흥미롭다. 외양간에서 쇠똥을 치우는 엄마와 소가 핥을 수 있는 거리의 유모차에 잠자고 있는 아기 사진인데, 이런 곳에서 자란 아이들이 천식에 걸릴 확률이 도시의 깨끗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보다 훨씬 낮다는 것이다. 이는 주변 환경에 서식하는 균과 세균의 다양성에 기인한다고 한다. 식물과 땅의 미생물 관계나 인간의 장내 미생물의 관계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990년대 후반 이후에 발전한 미생물에 대한 지식 덕분이다. 만약 추적조사가 가능하다면 까치구멍집에서 자란 아이들이 도시의 아이들 보다 더 건강했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까치구멍집을 나와 산길을 따라 오르면 황목길이 풍애길로 바뀌게 된다. 

 

저 아래로 암돌에서 들어오는 길과 숫골 황목분교터에 자리한 창고가 보인다.

풍애리로 가는 길은 전부 포장이 되어 있고 가끔은 울창한 소나무 숲과 묵밭을 지난다. 조금 내려가면 급경사에 자리한 고추밭과 귀농인의 농막이 가끔 눈에 띈다. 급경사가 끝나면 사과밭들이 시작되는데 이 동네의 사과밭은 다른 지역과 달리 병해가 없어 깨끗해 보인다. 

 

 

사과밭 시작점에 있는 폐가는 외양간, 부엌, 안방 그리고 윗방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소농가 가옥으로 부엌 앞에 깨진 ‘경월소주’병이 흘러간 세월의 양을 가늠케 한다. 1993년 경월소주가 두산에 인수되고 그린소주가 출시되었다고 하니 깨진 소주병은 30여년의 시간을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산길을 내려와 강이 보이는 구간에 도달하면 보이는 색색의 바람개비는 ‘낙동강 세평하늘길’ 표식이다. 바람개비 아래로 보이는 나무계단을 따라 오르면 도하댐으로 내려가는 구간인데 2년 전에 걸은 적이 있다. 얼마 전에 「현동–암돌-도하-풍애-황목-암돌」로 역주행 하는 길을 걸으려 도하까지 갔으나 관리가 되지 않아 잡풀이 우거져 포기하고 돌아섰다. 전국적으로 걷기 열풍 이후 지자체들이 도보코스를 많이 만들었으나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 사람의 길들은 모두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저 아래 예전에 사용하던 잠수교가 보인다. 저 다리를 사용할 때 큰 비가 오면 황목으로 돌아서 다녔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황목의 잠수교가 잠기면 풍애로 와서 이곳 다리를 이용하고 있는 중이다. 

 

 

 

풍애에서 분천역까지 나가는 길은 넓고 깊은 강변길의 과수원길과 전나무 숲이 어우러져 걷기에 아주 좋은 코스다. 

 

<사진_마지막 세번째 다리를 건너면서 보이는 분천 산타마을의 풍경>

 

현동역으로 들어가는 현동대교에서 분천역 입구까지는 대략 13km이고, 여기서 현동대교까지는 약 5km가 더 걸린다. 현동대교 가는 길에 보이는 낙동강 풍경, 분천역 입구에서 ‘외씨버선길’과 동행한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걷는데 “꽃길”이란 노래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았다. 

 

 

꽃길 <후반가사> / (김순곤 작사, 임강현 작곡 )

 ...

(생략)

다시 돌아가라 하면 싫어요 난 못가요

비단옷 꽃길 이라도 이제 다시 사랑 안 해요

몰라서 걸어온 그 길

알고는 다시는 못가

아파도 너무나 아파

꽃길은 또 무슨 꽃길

몰라서 걸어온 그 길

알고는 다시는 못가

아파도 너무나 아파

사랑은 또 무슨 사랑

꽃길은 또 무슨 꽃길

 

조금 전 수안골에서 만난 할머니 때문인지 아니면 내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노래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다시 살아보라 하면 싫어요 난 못해요

비단옷 꽃길이라도 이제 다시 안 살아요

몰라서 걸어온 그 길

알고는 다시는 못가

아파도 너무나 아파

꽃길은 또 무슨 꽃길

 

 

다시 살아보라 하면 어찌할까?.. 어찌할지는 더 생각해 봐야겠다. 하지만 지난 번 그만 둔 역주행 코스는 이번 겨울에 다시 걸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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