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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사의 국보(國寶)는 어디서 왔을까?
Date : 2023-05-16
Name : 장 선녀 File : 20230516214007234.jpg
Hits : 27

  • 이야기가 있는 문화탐방

     

     

    흑석사(黑石寺),

          

    흑석사의 국보(國寶)는 어디서 왔을까? 

     

       글. 안경애

    사진. 이원식

     

     

         黑石寺冬雨 乙巳冬     

     

    冬序宜寒反作暄

    峽天中夜雨飜盆

    憑添一掬憂時淚

    寄與前溪到海門

    흑석사에서의 겨울비, 을사년 겨울

     

    겨울이야 마땅히 춥지만 도리어 요란해 지더니

    골짝 하늘 한밤에 비 내려 화분을 엎었네

    걱정 한 움큼 더해 때때로 눈물을 흘려

    앞시내에 띄웠더니 바다에 이르렀네

     

    위 시는 영주 출신의 문인인 김시빈(金始鑌, 1684∼1729)의 『백남선생문집(白南先生文集)』에 나오는 ‘흑석사에서의 겨울비(黑石寺冬雨)’라는 시다.

    하늘에서 본 흑석사

     

    ‘흑석사(黑石寺)’는 영주시 이산면 박봉산 자락 얕은 구릉에 위치한 사찰로 통일신라시대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흑석사의 흑석(黑石)은 사찰 부근에 바위 빛깔이 대개 검은 데에서 유래하였다는 이야기와 흑석사 동쪽으로 600m쯤 내려가면 거대한 검은 바위가 있어 ‘흑석’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 이름에서 따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창건이후 고려시대까지 사찰에 대한 기록은 찾아 볼 수 없고, 1530년(중종 25)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군 남쪽 15리 지점에 있다(在郡南十五里)”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전기까지는 온전히 존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복장유물

     

     

     

    그러나 1799년(정조 23) 전국사찰을 조사하여 기록한 책 『범우고(梵宇攷)』에 “흑석사가 버려져 승녀가 없는 절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흑석사가 표시되어 있으나, 19세기에 제작된 『광여도(廣與圖)』에는 흑석암(黑石庵)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때 재난을 당한 뒤 사세가 급격히 기울어진 흑석사는 겨우 명맥만 이어져 왔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흑석사는 한국전쟁 전 공비출현으로 소백산 일대에 소개령(疏開令)이 떨어지자 소백산 초암사(草庵寺)에 머물던 상호스님이 초암사의 목재들을 옮겨와 임진왜란으로 소실돼 암자(庵子)만 남아 있던 흑석사를 크게 중건하였다고 한다. 현재 흑석사에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복장유물’이 국보(제282호)로 지정돼 있는데, 이 불상의 시주를 권하는 보권문(普勸文)과 조성 내력을 적은 복장기(腹藏記)에 의해 원래 정암산(井巖山) 법천사(法泉寺) 불상임이 밝혀졌다. 

     

     

    복장유물

     

     

    그러나 정암산 법천사가 어딘지는 알 수 없다. 법천사가 몇 군데 있지만 자리한 산 이름이 다르다. 유력한 법천사는 원주 법천사인데 현재 법천사지(法泉寺址)는 명봉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산 이름인 정암산(井巖山)으로 법천사를 추정해 볼 수도 있는데 한자가 다른 정암산(淨巖山)은 강원도 정선에 있다. 이 정암산에는 정암사라는 사찰이 있다. 그러나 법천사라는 사찰이 존재하였다는 사실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1992년 조사에서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보권문(普勸文)과 복장기(服藏記)가 발견되었는데, 이 복장 기록에 의해 1457년(세조3) 2월, 정암산 법천사에서 대화주 성철(性哲)의 주도로 태종의 둘째아들인 효령대군(孝寧大君), 태종의 후궁인 의빈 권씨와 명빈 김씨의 후원아래 불사의 참여를 권하는 권선첩(勸善帖)을 만들었고, 시주물품을 거둬 이듬해인 1458년 10월에 아미타삼존상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보권문

     

    또한 복장기에는 세종의 사위인 연창위 안맹담(安孟聃) 등 내명부와 왕실 종친을 비롯한 시주자 248명 등 총275명의 참여 인원들의 명단이 187행에 걸쳐 자세하게 기록돼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흑석사 복장기에는 불상제작에 참여한 장인 이름이 소임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화원(畫員)은 이중선(李重善)과 이흥손(李興孫), 부금(付金)은 김한신(金漢信), 금박(金箔)은 이송산(李松山), 칠금(漆金)은 우롱(牛籠)과 막동(莫同). 각수(刻手)는 황소봉(黃小奉), 마조(磨造)는 김궁동(金弓同), 소목(小木)은 양일봉(梁日峯)으로 기록되어 있다. 

     

    ‘화원’은 불상의 초본을, ‘각수’와 ‘소목’은 나무를 다듬어 불상 만드는 일을, ‘마조’는 불상 표면을 다듬고 마무리하는 일을, ‘부금’과 ‘금박’은 금박을 만들어 불상에 붙이는 일을 했다는 뜻이다.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복장기

     

    복장기에 언급된 중앙관아 소속 공장들인 금박장, 마조장, 소목장 등의 명칭은 경국대전과 조선왕조실록에서도 확인된다. 경국대전 공전(工典) 공장조 기록에 의하면 ‘금박장’은 공조와 상의원, ‘칠장’은 병조와 상의원, 군기시, ‘마조장’은 상의원과 군기시, 선공감, ‘목장’은 군기시와 교서관, 선공감, 내수사, 조지서, 귀후서 등에 배속되어 있었다.

     

    흑석사에는 국보 제282호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복장유물 뿐 아니라 보물 제681호 영주 흑석사 석조여래좌상,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55호 흑석사 마애삼존불상 등이 있다. 현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흑석사에 봉안되어 있고, 복장유물은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석조여래좌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기와집 구조 보호각에 봉안하였다. 원래 흑석사 부근에 매몰되었던 것을 발굴하여 봉안하였는데, 발굴 당시 마모가 심하였으나 현재는 석회로 보완하여 놓았다. 흑석사 마애삼존불상은 자연 상태 바위에 새긴 것으로, 중앙 본존불과 좌·우 협시보살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존불 모두 입상이지만 본존불의 가슴 아랫부분과 협시보살의 목 부분 아래를 새겨 넣지 않은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추위가 한 발짝 다가선 지금,

    스산해진 절간 장명등이 시방세계를 환히 비추면 온갖 시름 앞시내에 띄워 보내고, 박봉산 자락 흑석사 아미타불의 천년불심을 찾아 두 손 모아 합장한다. 

    무량공덕이 내 마음의 파고다를 이루는 그날 모든 굴레 벗어던지고 해탈의 바다에 이르기를...

     

     

    ※참고: 한국미술사연구소 학술총서 52

     

     

  • 안경애글쓴이 : 안경애영주에서 다양한 문화활동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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