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화와 함께 떠나는 의성 시가기행

대곡사 범종각과 다인 고현(多仁 古縣) 이야기

글. 안종화 

 『삼국사기 지리지』에 의하면 의성군 다인면 지역은 삼국시대 신라의 달이현(達已縣)1) 이었다. 다이현(多已縣)으로도 불렸다. 『고려사 지리지』에는 “다인현은 본래 신라의 달기현(達己縣)인데, 다기(多己)라고도 한다.”라고 하였다. - “이(已)와 기(己)가 혼용되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 에는 다인현으로 이름을 바꾸고 상주의 속현이 되었다. 1274년(고려 원종 15)에는 보주(甫州, 현재의 예천)로 이속(移屬) 되었다. 이후 1895년(조선 고종 32) 비안군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군·면·동(리)을 통폐합할 당시에 현내면과 현동면, 현남면을 통합하여 의성군 다인면(多仁面)으로 개편되었다. 다인면에 있는 대곡사 범종각과 함께 다인 옛 고현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인(多仁)이라는 지명의 유래(由來)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지명과 연계 지어 거론된 적은 있다. 《논어》〈이인(里仁)〉에 “마을의 인심이 인후한 것이 아름다우니, 가려서 인(仁)에 처하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라고 하였다. 고을의 이름이 공자의 이 말과 유사하므로 동주(東州) 이민구(李敏求, 1589~1670)는 살기 좋은 곳이라 여겨 다인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서 살고자하였다.(詢多仁而願處兮)2)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석문(石門) 정영방(鄭榮邦, 1577∼1650)은 용궁현 포내리(현재의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에서 태어났다. 정영방은 거처하던 익장(益庄, 현재의 예천군 지보면 지보리) 인근을 노래하였는데, 익장삼십삼영(益庄三十三詠)에서 인근 다인현 지역도 일부 소개하고 있다. 석문선생의 문집(石門先生文集)에 관문인 다인진을 건너며 이 고을을 논한 시에서 공자를 거론하기까지 하였다. 지명에 의거 읊은 것이리라. 다인진(多仁津)이란 시가 있다.

고을의 진산으로 비봉산이 있다. 평지에 우뚝한 모습이 봉황이 나는 모습과 같아 예전부터 여덟 군데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져 온다. 산 기운이 부드럽고 인자하여 책을 읽기에 좋은 곳이라 학자가 많이 나올 모습이라고도 하였다. 

조문국 시절, 사람들이 가음면 비봉산에 깃든 봉황이 머물길 희망하였던 것처럼 이 지역에도 봉황이 계속 머물러 있길 기원하였다. 산 인근에 봉황이 먹을 대나무(竹) 열매를 의미하는 자(字)를 넣어서 곤죽(昆竹), 죽림(竹林) 또는 봉황이 마실 샘을 뜻하는 의미로 봉정(鳳井)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다인 고현(古縣) 소재지였던 평림리 오래되었다는 회화나무 숲에는 대나무 열매를 위해 심은 죽림(竹林) 일부분이 아주 조금 남아 있다. 그리고 대나무 아래에는 돌무더기가 있는데, 마치 영원히 부화하지 않을 듯 ‘봉의 알(鳳卵)’처럼 생겼다. 정영방은 비봉산(飛鳳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비봉산은 보는 곳마다 다양한 모양이다. 효천지 방면에서 바라보면 봉황이 날고 있는 형상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산천조(山川條)』와 『여암전서(旅菴全書)』산수고(山水考)에 “남쪽 경주에서부터 400여 리 구불구불 이어져 와서는 우뚝 솟아 있는 모양이 마치 봉황이 날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하여 비봉산이라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산 모양이 봉황이 날고 있는 형상이라는 것이다. 반면 태허(太虛) 경일(敬一, 1636~1695)의 『대곡사창건전후사적기(大谷寺創建前後事蹟記)』에서는 “봉황이 천길 높은 산 위를 날다가 덕이 빛나는 사람을 보고서 찬란하게 내려오는데…”라고 하였다. 위의 시는 구체적으로 어느 때 봉황이 고을로 내려와 춤추려 하려는지 묻고 있다. 

『삼국사기』에 우륵이 지은 가야금 12곡(曲) 가운데 네 번째로 달이(達已)는 이 고장의 속악(俗樂)이었다. 이 고장만의 춤과 노래가 있었다. 가야 세력권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배제하려는 경향도 있으나, 538년(신라 법흥왕 25)에 지었다는 미지악(美知樂)과 신문왕(神文王) 때에 연주되었던 무악(舞樂) 미지무(美知舞)가 인근 단밀지방의 음악과 춤이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에 기존 학설5)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인근 상주 함창지역에 고령가야국이 있었고, 선산지역에 신라불교의 초전지(初傳地)가 있었다. 법흥왕 당시에 불교가 공인6)되었는데, 그의 비(妃)는 조문국 왕녀가 신라로 시집가 형성된 진골정통7)계통의 보도부인(保道夫人)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법흥왕이 미지악(美知樂)을 만들지 않았을까? 

비봉산 정상 가까이 대곡사의 마지막 남은 암자 적조암이 있다. 예전 이곳에서 예천 지보와 우천 등지의 인재들이 학문을 연마하여 명성을 얻고 다인의 인물이 되었다. 한국미래예측연구소 노병한 박사는 『기도발이 센 기도명당 50선』의 하나로 적조암을 사법고시 합격기도 명당으로 선정하였다. 낙파유고(樂波遺稿)에 의하면 낙파(樂波) 김용한(金龍漢, 1826~1891) 공이 적조암에서 책을 읽으면서 지은 『적조암독서(寂照庵讀書)』라는 시가 있다. 당시에 책을 읽는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음미해 보자.

비봉산의 정상부는 평탄하고 넓다. 사방이 급한 경사를 가진 마늘봉(蒜峯)으로 후백제의 견훤이 한때 웅거하고자 쌓았다는 산성의 흔적을 간직한 ‘성뜰’이 있다. 송설헌(松雪軒) 정태래(鄭泰來, 1683~1721)가 비봉산을 다녀가면서 『유비봉산기(遊飛鳳山記)』를 쓸 당시만 해도 성의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산 정상에 오르면 안계평야와 도청소재지 등 동서남북 사방이 훤하게 보인다. 선대 현인들의 말씀에 의하면 ‘책을 읽는 여가에 가끔 유람하게 되면 정신을 맑게 하고 성정을 가다듬어 혼미한 정신이 없어진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비봉산이 있어 책을 읽기에 더욱 좋다.

1274년(고려 원종 15)에 보주(예천)의 아전이었던 임지한(林支漢) 장군이 동도(東都, 현재의 경주)의 배반한 장수를 징벌하는데 세운 데 보상으로 다인현을 이속하여 줄 것을 원하였다. 이에 월경지이자 관할구역 밖에 위치한 다인현이 예천의 속현이 되었다. 이 고장을 원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위에서 나열한 여러 가지 좋은 점들 때문일까? 아니면 사금이 생산되는 곡창지대8)였기 때문일까?

비봉산에서 광석을 캐낸 뒤 금을 채취하기 위하여 쓸모없는 것을 가려내는 작업을 하던 선광장

 『동국이상국전집(東國李相國全集)』에 전하는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17일 대곡사에 들어가다.”라는 시에 의하면 대곡사 앞에까지 배가 들어왔다. 또한 이 시가 전해오는 것으로 볼 때 지공(指空)과 나옹(懶翁)이 창건하기 이전부터 대곡사가 있었다.『대곡사 창건 전후 사적기』에서도 “이 절을 처음 창건한 시기는 신라 때라고 하지만 세월이 오래되어 알 수 없다. …”라고 하였다. 

대곡사는 여느 사찰처럼 산 깊숙이 자리하고 있지 않다. 사적기와 중창기 등을 살펴보면 비보(裨補)하기 위하여 창건하지도 않았다. 낙동강변 교통의 요지에 있을 뿐이다. 1368년(고려 공민왕 17) 인도 출신으로 국사로 임명받은 지공 대사와 “…산 같이 물 같이 살다가 가라하네(如山如水生涯以去).”라는 많은 사람이 읊조리던 시를 지은 나옹화상이 중창하였다. 한창 번성할 적에는 적조암을 비롯하여 9개의 암자가 있었다고도 한다. 선(禪)불교의 원류인 두 스님이 초제(招提) 사찰로 중창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1872년 지방지도’를 보면 안계역을 지나 예천지역으로 향하는 상경대로(上京大路)에 대곡사가 있다. 낙동강을 건너는 교통의 요지에 있다.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관료인 권벌(權橃, 1478~1548)의『승선시 일기(承宣時 日記)』에 의하면 이 길을 통하여 안동, 풍산 등지로 갔다.『초간일기(草澗日記)』를 읽어보면 권문해(權文海, 1534~1591)는 1589년 4월 27일 2수의 시를 시축에 남겼다. 달성에 부임하여 체직할 때까지 예천의 부모님을 뵈러 가면서 6년 동안 습관처럼 이곳 선방에 들러서 묵었다. 후기의 학자 정시한(丁時翰, 1625~1707)도 대곡사에서 밥을 해 먹고 말을 먹였으며, 삭주 부사를 지낸 노상추(盧尙樞, 1746~1829) 공의 일기에는 대곡사를 16번 이상이나 드나든 것으로 쓰여 있다.

다인은 교통의 요충지에 있다. 얼마나 중요한 지역인지 알려주는 글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791년(정조 15) 9월 19일 사직(司直) 신기경(愼基慶, 1720~1797)이 여러 가지 시무책에 대해 상소하는 내용이 있다. 그중 밀성현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이 지역에 지키는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왜적을 저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옛날의 밀성현(密城縣)은 상주(尙州)와 예천(醴泉) 사이에 있었는데, 어느 때에 혁파해서 상주에 속하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중간에 또 단밀(丹密) 등 네 면(面)을 나누어 상주에 붙이고, 다인(多仁) 등 네 면은 예천에 소속시킴으로써 두 고을의 소재지까지는 거리는 다 100여 리나 되는데, 그 여덟 면에 사는 사람들은 7,000호로 토양이 비옥하고 마을이 흥성하며 고을 소재지였던 옛터와 관리의 자손들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지형으로 말하면 예천이 다인과는 용궁현(龍宮縣)을 넘어서 삼강(三江)이 그 사이를 갈라놓고 있으며, 단밀이 상주와는 거리가 매우 떨어져 있고 두 강이 그 사이를 갈라놓고 있습니다. 요충지로 말한다면 동래부(東萊府)로 통하는 직로(直路)가 전부 이 두 경계 사이에서 모이니, 진정한 지역의 요충지입니다. 비안(比安)ㆍ함창(咸昌)ㆍ상주ㆍ예천과의 거리는 거의 2백 리에 가까운데, 공연히 텅 비어 있습니다. 과거 임진왜란 당시 왜적들이 승승장구한 것도 이 길에 가로막고 지키는 시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당시 미리 한 군을 설치하여 견고한 만경(萬景)과 비봉(飛鳳) 두 산으로 차단하고 험난한 위수(渭水)와 낙동강의 세 나루를 끼고서 높이 성을 쌓아 죽음으로써 굳게 지켰더라면 그들이 어찌 감히 이처럼 처참하게 돌파하여 유린할 수 있었겠습니까. 밀성현의 읍을 복구하고픈 소망은 모든 백성이 한 입처럼 말합니다. 백성들의 심정이 이와 같으니, 비록 약간의 어려운 점이 있더라도 어찌 망설이며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이 있겠습니까.』

비봉산 북쪽 낙동강과 그 너머 저 멀리 하얀 띠 모양으로 도청 신도시 건물이 조망된다.

사람들은 수려한 산세와 고즈넉한 사찰의 운치로 대곡사에서 하루를 묵기도 하고, 잠시 머물며 풍류를 즐기기도 하였다. 그중 권호문(權好文, 1532~1587)이 대곡사에서 유경문과 마주앉아 읊은『대곡사여유경문대영(大谷寺與柳景文對咏)』시가 있다. 관수루와 문소루에 이어 누각을 소재로 의성 지역을 소개하였는데, 대곡사에도 대웅전의 전위누각(前衛樓閣) 기능을 담당하는 중층의 범종각(梵鍾閣)이 있다. 이곳에 올라 지은 시를 우선 소개하고자 한다. 

많은 선인이 방문하여 그들의 문집에 풍경 등을 노래하였는데, 하나같이 이 고장을 칭송하고 있다. 삶의 의미에 침잠했던 옛 사람의 풍류와 지혜가 담긴 한시도 있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다인현에서 자는데 비가 오다[宿多仁縣有雨].”라는 시도 그중의 하나일 것이다. 1468년 봄에 평사(評事)로 절도사(節度使) 진례군(進禮君)을 따라 다인 고현에서 묵는데, 영가(永嘉, 안동) 사람이 뒤따라왔기에 그와 작별하고서 느낌을 적은 것이다.

다인 고현 죽림마을에 현청 옛터를 알려주는 비석과 회나무. 숲 아래에 대나무가 조금 있다.